적갈색의 머리카락이 나부낄 때 우리는 불꽃을 연상하곤 했다.
몸을 데울 모닥불이든, 열기를 안겨다 줄 화톳불이든. 그야말로 축제에 어울리는 남자라고, 모두가 동의했다.
그러나, 그 눈을 들여다 본 적이 있는가?
채도 없는 회색의 눈동자.
마치, 안개 낀 새벽을 담은 양 고요한…….
Profile.
칼날처럼 날카로운 외양과는 달리, 서글한 미소를 걸쳤다. 호방한 웃음소리와 낙천적인 기질이 그가 지닌 두 번째 본성일지도 모른다.
술잔을 기울이고 곰방대를 머금는 것, 혹은 무예의 폼을 완벽히 갖추거나 말 위에서 바람을 가르는 순간까지─삶의 모든 면면을 온몸으로 즐기는 남자. 선악을 구분짓지 않고 온전히 누림에 있어 누구와 어울림든 모남이 없다.
그러나, 그 호전적인 기질 또한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칼을 뽑는 순간의 흥분된 눈빛, 싸움판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열정은, 어쩌면 주군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여겨야 할 호위무사라는 그의 직분과는 묘하게 어긋나 보였다.
etc.
- 가슴팍에 새겨진 잉어 문신이 트레이드마크. 귀를 장식할 때는 유독 한 쪽만을 고집한다.
- 등에 매달린 것은 장권長卷으로, 위험을 방지하고자 천으로 단단히 감싸두었다. 두터운 날의 윤곽 탓에 멀리서 보면 창처럼 착각하기 쉽다고. 허리춤에는 야태도와 소도가 각각 하나씩 자리하여, 무인으로서의 면모를 조용히 증명한다.
- 스킨쉽에 있어 대체로 너그러운 편이나, 일정한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낯에는 미묘한 불쾌감이 스친다.
과거, 그리고 현재.
문관의 길을 걷던 형제들과는 달리 타고난 무인의 기질을 지녔다. 십수 년 전에는 벼슬직까지 올랐던 자랑스러운 과거가 있었으나, 가문에 닥친 불행 이후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가족들의 생사 역시 뒤안길에 묻혔다.
오랜 벗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한 뒤, 파란만장한 여정을 보냈다. 신분을 숨긴 채, 그림자에 걸쳐 사는 삶.
양반들과 마주치는 것을 꺼리고, 과거의 일에 휘말릴 것을 경계하며.
그는, 자신이 머무른 자리에 어떠한 것도 남겨두지 않는다.
수 년을 보낸 방조차 침구와 옷장, 무기를 세워두는 장식대가 다였다고 하니, 검소함으로 비치기엔 지나쳤을 테다.
여관의 사용인이 종종 들여오는 여러 권의 서책 정도가 생활감의 전부이자, 지난 신분에 대한 증명이었다.
나기를 양반으로 났으나, 살기를 한량처럼 살지 않았나. 몰락의 시기마저 제 하고 싶은 것은 다 누렸다.
때문에 현재의 삶에 감히 불만을 토하겠느냐만… 간간이 끓는 그 어쭙잖은 자존심이, 제 발목을 붙든다.